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앨버트 빅터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영국]]의 국왕 [[에드워드 7세]]와 [[덴마크]]의 [[덴마크의 알렉산드라|알렉산드라 공주]]의 [[장남]]으로 [[빅토리아 여왕]]의 장손.[* [[조지 5세]]의 형이자 [[에드워드 8세]]와 [[조지 6세]]의 큰아버지이다.] 본명은 앨버트 빅터 크리스티안 에드워드. 보통은 클래런스 공작으로 불린다.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아버지인 [[에드워드 7세]]의 뒤를 이어서 [[웨일스 공]]인 왕세자를 거쳐 영국의 왕인 [[에드워드 8세]]가 되었겠지만 [[테크의 메리]] 공녀와 약혼했다가 [[1892년]] [[1월 14일]], 28살의 나이에 [[인플루엔자]]에 걸려 요절했고 왕위와 약혼녀 모두 남동생인 [[조지 5세]]가 차지해서 왕세손이 됐고 메리와 결혼했다.[* [[에드워드 8세]]라는 왕호는 조카이자 남동생인 [[조지 5세]]의 [[에드워드 8세|장남]]이 이어받았다.] 앨버트 빅터라는 이름은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할머니 [[빅토리아 여왕]]이 자신과 [[앨버트 공|남편]]의 이름을 딴 '앨버트 빅터[* ‘빅토리아(Victoria)’의 남성형 이름.]’라고 결정해놓은 것이다. 이는 장남 부부인 [[에드워드 7세]]와 [[덴마크의 알렉산드라]]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, 빅토리아 여왕이 멋대로 정해버린 것이라고 한다.[* 빅토리아 여왕의 앨버트 이름 사랑은 이때 뿐만이 아니었다. 자신의 장남 [[에드워드 7세]]가 태어났을 때도 퍼스트 네임을 앨버트라고 지었다. 둘째 증손자 [[조지 6세]]가 태어났을 때도 남편 앨버트 공의 기일에 태어났다며 눈길 한번 안 주다가, 부모인 [[조지 5세]]-[[테크의 메리|메리]] 부부가 아기의 이름을 앨버트로 짓겠다고 하자 반색을 하며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. 심지어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들은 '''전원''' 미들네임에 앨버트가 들어간다.] 결국 여왕의 뜻대로 '앨버트 빅터'라는 이름을 받았으며, 가족들에게는 미들네임인 에드워드의 애칭인 '에디'라고 불렸다.[* 원래 유럽의 왕족과 귀족들은 퍼스트 네임 대신 미들네임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